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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발꿈치 때

기사승인 2019.08.19  1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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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행사를 명절 대목 목욕이라 불렀다. 1년에 겨우 2번 정도였지만 목욕탕 가는 게 무척 싫었다. 우리 또래 아이들은 매 한 가지였다. 1960년대 후반쯤의 일이다. 어머니는 형에게 목욕비를 쥐여 주며 동생들을 인솔하게 했는데, 목욕을 마치고 집에 오면 손등과 발을 집중적으로 검사했다.

검사받을 때, 우리는 손은 오리발처럼 내밀었고 발은 양말을 벗어서 발바닥까지 치켜들었다. 실제로 한 번은 불합격당해서 다시 목욕탕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다. 목욕탕집 아줌마가 다시 쫓겨 온 우리를 보고 씩 웃었을 때 어린 나이에도 무척 창피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반년 정도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충분히 불려야 했는데, 뜨거운 탕 속에서 형이 나오라고 허락하기 전까지 답답함을 참으면서 버티는 것이 가장 괴로웠고, 묵은 때를 벗기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특히 발뒤꿈치의 굳은살과 때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당시에는 흔히 이태리타올이라 부르는 거칠거칠한 때수건도 없을 때였기에 보통 수건을 야무지게 뭉쳐서 때를 벗겼는데 발뒤꿈치는 역부족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보통은 탈진 상태에 이르는데 그때, 어머니의 당근이 위력을 발휘했다.

바로 목욕탕 앞에 있는 제과점에서 빵을 하나씩 먹을 돈을 얹어서 주곤 했기 때문이다. 오란다 빵이라 불렀던 그 빵은 길고 향기로운 버터 냄새가 났다. 그 빵 때문에 목욕탕 가는 고행이 조금은 견딜 만했다. 요즘, 어쩌다 제과점에 들러서 찾아봐도 혼을 빼놓던 달콤한 그 빵은 이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그 빵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나와 형은 4살 터울이다. 형이 중1이었으니 나는 3학년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닌 내가 이 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어린 나이에 형의 의젓함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날 대목 목욕을 갔는데 그날도 발뒤꿈치 때가 문제였다. 당시에는 목욕탕 안에 크고 작은 차돌이 몇 개 굴러다녔다. 난 어려서 그 돌의 용도를 몰랐기에 아예 관심도 없었다. 형과 나란히 앉아서 발뒤꿈치를 움켜쥐고 끙끙거리고 있으니 옆에 앉은 아저씨가 말했다. “저기 돌 있잖아, 그 돌로 비비면 금방 벗겨진다.”

그 말은 들은 형은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아저씨, 그런 방식은 일제 강점기에 하던 방법입니더. 왜놈들이 하던 방식은 따라하모 안 됩니더.” 머쓱해진 아저씨가 할 말이 없어서 쩝쩝거리며 저만치 옮겨 앉았다.

형은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쯤 되면 저렇게 고상한 말을 할 줄도 알고 어른들에게도 떳떳하게 주장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형은 거인이었고 우상이었다. 나도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을 정도였다.

커서 교사가 되어 중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문득문득 그때가 생각나서 아이들과 비교를 해 보곤 했다. 당시에는 거인처럼 커 보이던 중1의 학생들은 입가에 우유 자국을 남긴 채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데 내가 저만한 나이에도 꼭 저랬을 것이다.

그 형은 훗날 어른이 되어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가 되었다. 8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는 교육민주화운동으로 해직된 후 두 번의 수형생활을 당하기도 하며 참교육 운동의 어른이 되었다.

세계의 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일본의 불법적인 경제보복에 분노하여 극일 운동이 불처럼 피어나는 요즘, 나는 중1 때의 형이 했던 말을 떠 올린다. “왜놈들을 따라 하면 안 됩니다. 일본 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외치던 일제 잔재가 이토록 끈질기게 남아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초래한 것이라고 외치는 다 큰 어른이 있고, 빨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서 해결하라고 야당의 정치인은 닦달하고 있으며, 기독교 목사라는 사람은 한국이 일본에 감히 대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이제 70이 다 되어 가는 형이 지금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아니, 그 시절의 까까머리 중1 학생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나무랄지 더 궁금하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저작권자 © 거제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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